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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p y r i g h t ⓒ J o a/소소한 이야기

수방사 심야식당 편 촬영 후, 아내가 말하는 후기

by Joa. 2016. 1. 15.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XTM에서 하는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수방사)' 1회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오빠도 엄청난 낚시마니아였으므로 헉! 헐! 어떻게 해! 소리 내며 온갖 감정 이입해서 방송을 봤더랬다. 그러고 나중에 오빠한테 수방사라는 프로가 있는데 오빠가 봤음 완전 좋아했을 거라고 낚시터 편 얘길 즐겁게 떠들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를 그 방송의 매력에 빠져 우리는 매 회 찾아보는 애청자가 되었다. 방송을 보면서 캠핑 편, 게임방 편, 사우나 편.. 이런건 난 완전 좋을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하고 오빠하고도 "수방사 신청하면 우리는 되지 않을까? 횟집?"이라고 장난치며 방송을 즐겨왔는데 어머?! 내가 그 수방사의 와이프가 되다뇨?! 헐! 네, 그래서 와이프 입장의 후기를 작성해 봅니다.


일단 남편의 방송 촬영 후기는 여기 → https://brunch.co.kr/@sadrove/56


저희 남편이 이렇게 행복합니다

방송 촬영 후, 오히려 오빠보다도 내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줬는데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것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    *    *  


Q1. 와이프는 정말 모르나요? 대본 없나요?


네, 와이프는 그 모든 사실을 하나도 모릅니다 ㅠㅠ 

만약 알았더라면 일본 여행에서 그렇게 먹방 찍고 다니지 않았겠죠. 그 날, 미리 방송 출연할걸 알고 신경 쓰고 나온 동생처럼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더 꾸미고 출근하거나 최소한 집에 들어올 때, 화장이라도 고치고 왔을 겁니다. 방송 촬영을 꿈에도 모르던 저는 하루 종일 돌아다닌 그 모습 그대로 방송을 타고 말았습니다. 

진짜... 출근할 때 남편이 오늘 동생 만나러 서울 가는데 옷이라도 좀 예쁘게 입고 가~ 라던지 동생이 헤어지기 전에 화장이 좀 번졌는데 고치지 그러냐 라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리얼리티를 위해 그러지 않았다고들 하네요 ^^ 나쁘다... 믿을 사람 하나 없어 ㅋㅋㅋㅋㅋ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 하루 사이에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미리 포섭된 가족, 친구들과 작가는 끊임없이 카톡보내며 필요한 시간만큼 저를 잡아두고요. 어쩐지 오빠도 동생도 계속 카톡 보더라 ㅋㅋㅋ


Q2. 그래서 꾸며진 집은 철거 안 하고 그대로 살고 있어요?


네. 철거하려면 돈 들어요 (...) 원하면 철거해준단 얘기도 있던데 방송에서 해맑게 웃던 남편 때문에 철거 생각은 아직까진 안 해봤어요. 거실이 아예 없어지긴 했어도 격투기나 낚시처럼 아예 못쓰게 한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이자까야 스타일로 변해버려서 분위기는 좋은데 제가 요리를 전혀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멋은 좀 없지만, 전구 하나만 기존에 쓰던 램프로 교체해서 쓰고 있어요. (참고로 주방 레일등은 저희가 설치한 거라는) 그리고 참치 냉동고는 아무래도 업소용이라 소음이 좀 있어서 주방에서 빼고 베란다로 옮겼습니다. 그 밖에는 크게 바꾸지 않고 살고 있네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저 홍등... ㅠㅠ 안방 문 열고 나오자 마주치는 풍경이 이렇다니 ㅋㅋ

주광색이랑 전등색 조명이 섞여서 약간 어색하지만, 그래도 생활은 해야하니까요.

방송 촬영용으로 구비해주신 청주는 우리가 야금야금 마셔버림 ㅋㅋ

네, 저희 이렇게 살아요

Q3. 방송 보니 별로 싫어하시지 않던데요, 그 날 어떠셨어요?


관찰카메라 때도 그랬지만 원래 제가 좀 웃는 상에 웃음이 많아요. 평소에 그런 말 들어도 내가?라고 생각했는데 몰래 카메라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ㅋㅋㅋㅋ 어이없어도 웃고 황당해도 웃고, 낯가림이 좀 있어서 그렇지 리액션이 크고 돌고래톤이라 방송에서 더 그렇게 보인 것 같아요. 몰랐는데 후기들에서 해맑은 남편과 화 안 내고 웃고 있는 저흴 보고 보기 좋다, 와이프가 착하다 이런 말이 있던데 민망하네요;;;; 방송 어떻게 나올지 두려웠는데 XTM 피디분들, 작가분들, 스탭분들은 모두 천사였어요! 악마의 편집 따위 없다!!!! 적어도 저희 편에서는 ㅎㅎ


관찰 카메라 땐 아예 몰랐고, 그 날도 처음 현관 열고 들어왔을 땐 알 수 없었어요. 덩치 좋으신 손님분들이 후다닥 나가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왜 가시냐 인사하느라 바빠, 덩치에 가려져 집 꾸며진 거 몰라, 강아지 안아주고 뭐하고 하느라 모르다가 나가시고 고개를 들어보니 제일 처음에 눈에 들어온 건 냉장고 위치와 웬 벚나무가 있더라고요?;;;; 


수방사 마니아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당황해서 그런가 바로 수방사를 떠올리지 못하고 아, 저 친구분들이랑 오빠면 냉장고 위치 옮기는 건 일도 아니겠고 정말 셋이서 한 건가? 싶었죠. 그러다가 대나무도 보이고 다찌도 보이고 그제야 이거 수방사구나 싶었다는. 수방사인 거 알게 된 후로도 집에 이렇게 바뀐 게 어이없고 정말 우리가 방송에 나간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웃기만; 그리고 다른 분들도 이야기해주셨듯 거실이 없어지긴 했어도 나름 예쁘게 잘 되어서 화나 짜증이 별로 안나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 날, 방송에서 제가 비린내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데요. 참치회 때문이라기 보다 일부러 방송을 위해 방어 해체랑 고등어 구이를 하는 바람에 집에서 비린내가 많이 나서 그랬어요.

괜찮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화를 덜 낸 이유는 저희는 이미 모든 주방기기를 따로 쓰고 있었어요. 생선 요리도 구이, 조림, 탕 요리는 거의 안하고 회 중심으로만 먹고, 방송에서처럼 그냥 생선을 가져와서 집에서 손질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죠. 그러면 비린내가 심하니까요. 수산시장에서 피 빼고 적당히 손질해와서 집에선 껍질 벗기고 회 썰어 먹는 정도였고 참치는 냉동 상태라 비린내가 많이 없고요. 

오빠와 저는 그동안 이런 식으로 맞춰왔고 저도 이미 썰어진 회에 대해서는 그나마 많이 적응된 상태이기도 하다 보니 원래 오빠의 로망같은 거라 그러려니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적당히 견딜만은 한데.. 예상치 못하게 그 큰 도마에서 비린내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요즘 좀 걱정입니다. ㅠㅠ


Q4. 정말 생선 싫어하는 거 맞아요?


제가 반응이 다른 와이프분들에 비해 심하지 않아서 거짓 아닌가 의심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생선 비린내를 못 참아서 생선을 안 먹었어요. 임연수는 심심이, 고등어는 짭짤이라는 애칭까지 붙여가며 이모와 엄마가 어떻게든 먹이려고 했는데 거의 못 먹었죠. 회사 다니면서도 회식으로 횟집은 항상 거부하고 어쩌다 가게 되면 밑반찬만 먹었어요. 


결혼 후에도 미안하지만 오빠에게 생선요리는 한 번도 해준 적 없어요. 비린내 때문에 생선 손질 자체를 못하고 좀 심하게는 같이 수산시장 가면 처음에 코 막고 숨 참고 다녀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유난 떤다고 할까 봐 코로 숨 안 쉬고 입으로 헉헉; 유별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죠;;; 


Q5. 그렇게 식성이 안 맞는데 어떻게 남편하고 결혼하게 된 거죠? 


사귀기 전에도 오빠가 회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 정도인줄은 몰랐죠. 연애를 시작하면서 매주 참치집을 다니고 단골 횟집이 많은 오빠를 보며 장난 아니구나 싶었지만, 당시는 원룸에 살았어서 그런지 직접 참치나 생선회를 자주 떠먹지 않았어서 실감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생선을 싫어하니 매일 고기나 먹으러 다녔지, 같이 횟집 갈 일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었죠.


그런데 결혼을 두 달여 앞두고 제주에 정착하면서부터 오빠의 회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차로 20분이면 가는 수산시장, 널리고 널린 저렴한 횟집, 심지어 낚시 가서 직접 잡아온 광어, 참돔, 벵에돔, 우럭.. 크.. ㅠㅠ 오빠는 나날이 행복해지고 전 힘들어지는 생활이 시작된 거죠. 회를 떠먹고 나면 주방에서 나는 피 비린내와 생선 비린내에 무던히도 다퉜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미 제 남편인걸 ㅎㅎㅎ 


지금은 저도 많이 성장해서 참치회 중에 아카미라는 부위는 김에 묵은지에 싸서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가끔 구이도 먹어요. 생선회는 초장, 쌈장, 마늘, 고추 듬뿍 올려 쌈 싸먹기도 하고요. 친구들도 가족들도 깜짝 놀랄 발전입니다;; (끝)


*    *    *  


일본 여행 후에 최고 피크 몸무게 찍고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오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인생에 이런 경험을 누가 하겠어. 

비록 점점 심해지는 비린내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기는 한데, 나에겐 페브리즈가 있다!!

수방사에 나오기 위해서 거실 넓어 보이려고 나를 설득하고 설득해 소파를 미리 버리게 만든(어쩐지, 왜 자꾸 소파를 버리자는 건지 한참 싸웠음. 빈이가 소파를 다 긁어놔서 엉망이 되지 않았다면 버리지 않았을듯...) 오빠의 치밀함과 정성을 봐서라도, 요즘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오빠를 봐서라도 이 집에 사는 동안은 내가 참고 지내야 할 것 같다 ㅋㅋ

이상, 수방사 심야식당 편(횟집 편) 와이프 후기 끗!

궁금한 점 댓글 달리면 성실 응답해 드립니다 ㅋㅋㅋㅋㅋ